창립선언문

인문학은 삶과 앎, 노동을 만나게 하는 힘입니다.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만나고 대화하는 실천들이야말로 인문학의 본질입니다.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모색하려는 생활인이라면 누구든 인문학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인문학은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고 자본의 확대만 꾀하는 체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을 비판해온 그간의 논담에서 뼈저리게 확인한 것은 실천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우리 인문학협동조합은 공부와 삶의 불일치를 협동적 활동으로써 극복하고, 시민들과 인문학의 공유를 통해 서로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고, 인문학자와 인문학 공간들의 네트워크가 되고 싶습니다. 다음을 바탕으로 그렇게 하려 합니다.

첫째, 인문학 본연의 상상력과 태도입니다. 우리는 인문학협동조합을 통해 경쟁과 성과주의에 고착된 연구 문화와 제도를 개선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실천할 것입니다. 인문학적 가치를 존중하는 모든 이가 함께 하는 장이 되어 현재의 대학과 학술장에 결핍돼 있는 것을 비춰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기성의 장들이 더 나은 앎과 삶을 생산하게끔 자극하겠습니다.

둘째, 노동에 대한 존중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연구 노동자들의 일도 정당한 대가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새롭고 유력한 도구가 협동조합이라 생각합니다. 인문학협동조합을 통해 기존의 제도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일의 방식과 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또한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을 창출ㆍ기획하고 대학의 연구 노동의 실태를 개선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인문학협동조합은 젊은 인문학 연구자들의 각성과 결의로부터 출발했습니다만, 앞으로 삶과 앎, 노동의 행복한 공생을 꿈꾸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 및 협동조합들과 창조적 협업을 구하고, 곳곳의 지식공동체와 크고 작은 인문학 모임이 활발히 교통할 수 있는 공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또한 지식생태계의 편중 현상을 해소하고 지역과 계층의 앎의 격차를 줄일 방법을 찾는 일에도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에는 조합원의 상호 신뢰와 협동이 절대적입니다. 이는 인문학을 향한 열정만으로 쌓아가기 어렵습니다. 서로 돕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마음의 자세를 인문학협동조합에서 마련해야 합니다. 그 자체가 어렵고도 중요한 인문학적 실천입니다. 연대와 만남, 합리적 경제 활동과 상호부조의 힘으로 인문학협동조합은 나날이 흥미진진해질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진실로 가능하게끔 함께 대화하고 협동해나갑시다.


2013년 8월 31일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일동